자료실(관리자)

자료실(관리자)

[우리 술 답사기] 술잔 비워도 감도는 보리향, 칠십년 위엄지킨 장군의 술

페이지 정보

작성자 승규원세
작성일23-02-15 11:07 조회0회 댓글0건

본문

[우리 술 답사기] (51) 전남 강진 ‘병영주조’옛 전라 병마절도사 마셨다 알려진 증류주자체누룩으로 저온발효 후 1년 이상 숙성 풍미 깊고 뒷맛 깔끔…입안서 다양한 변주크라우드펀딩도 진출…젊은층 사이 인기



김견식 병영주조 대표가 직접 디딘 누룩을 살펴보고 있다. 강진=현진 기자 병영주조 소주는 수묵화와 닮았다. 담백하고, 굵고, 깊다. 이는 전남 강진군 병영면에서 거의 70년간 묵묵하게 술만 빚은 김견식 대표(85·제61호 대한민국 식품명인)의 작품이다. 그의 술에는 우리 술에 얽힌 통한의 역사도 함께 담겨 있다.“첨부터 술을 헐라고 생각도 안혔어. 우리 가족 먹을 식량이 부족하다봉게 나라도 보태야 쓰니까(보탬이 되어야 하니까) 집안 형님이 허는 양조장에 소위 말허는 깔땀살이(꼴머슴)를 혔어요. 아무리 친척이라고 뭐 헌 거(봐주는 것) 없이 일혔응께.”그는 18세에 양조장에 발을 들였다. 집안이 가난해 먼 친척이 운영하던 술도가에서 막내로 일하며 술을 빚고 배달했다. 팔팔정 효능 새벽부터 새벽까지 일하는 고된 나날이었다. 힘든 시기를 버텨내자 자연스럽게 술을 배울 기회가 생겼다. 기쁨도 잠시, 우리 술 역사에서 혹한기로 알려진 산업화시대가 시작됐다. 1965년 정부가 시행한 ‘양곡관리법’ 때문에 쌀로 만든 술 판매가 금지되고, 농촌에서 도시로 떠나는 이농현상이 발생했다. 농촌에서 술을 사 먹는 사람이 없으니 한때 직원 20명이던 양조장은 크게 기울었다. 1970년대 후반에 배운 게 술밖에 없던 김 대표는 떠안다시피 양 팔팔정 후기 클리앙 조장 주인이 됐다.



왼쪽은 쌀소주에 복분자와 오디를 침출한 증류주 ‘병영사또’, 오른쪽이 보리로 만든 증류주인 ‘병영소주’다. 강진=현진 기자 “양조장이 월급 주고 헐 처지가 못된 께(못되니까) 나도 인자 맡어서 헌 거죠. 주조장이 잘됐으면 넘어다도 못 봐요(감히 넘볼 수도 없었다). 잘 못됐응게 내 것이 생긴 것이제. 한때는 일이 너무 힘등께 진즉 기술 안 배우고 뭣 했을까 후회도 많이 혔는디….”는 옛 전라병영성의 병마절도사가 팔팔정구매처 마셨다고 알려진 술이다. 병영면은 보리나 귀리가 많이 나던 지역이다. 는 병마절도사가 마셨다는 술을 현대인 입맛에 맞게 재해석한 것이다.“병영성은 전라남도부터 제주도까지 관장했던 곳이여. 인자 강진인디(강진에 속했는데도) 여그 병영 사람들은 아직도 강진 간다 하제 읍에 간다 안해. 누가 시킨 거이 아이고(아니고) 습관여, 습관. 병영이 정체성이 강한 디(곳)여. 소주 이름도 그랴서 병영소주라 붙인 것이고.”는 우렁이농법으로 재배한 유기농 햇보리쌀과 김 대표가 직접 디딘 누룩으로 오랜 시간 저온발효해 상압증류한 다음 1년 이상 숙성해 만든 술이다. 상압증류한 술은 풍미가 깊다. 를 목구멍으로 넘기면 고소한 보리향이 은은하게 남고 끝이 깔끔하다.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는 “손꼽을 만한 보리소주, 입 안에서 다양한 변주가 펼쳐진다”고 호평한 바 있다.주황색에 가까운 짙은 노란빛이 도는 (40도)도 있다. 쌀 증류주에 복분자와 오디를 침출한 술로, 부드러운 과일향이 돋보인다. 자칫 독할 수 있는 술을 부드러운 후미로 감싸 안는다. 차게 해서 마시면 더욱 맛이 좋다.는 높은 도수에도 오히려 젊은층에게 인기가 좋다. 최근 크라우드펀딩 기반 쇼핑몰인 카카오메이커스에서도 성공적으로 모금·판매를 마쳤다. 70년 가까이 묵묵히 지킨 김 대표의 우직함이 빛난 것이다. 그는 앞으로 오크통에 숙성한 도 출시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출시한 제품들보다 도수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그렇다면 70년 가까이 술만 빚은 명인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전수자인 아들(김영희 전수자)에게 늘 말해요. 술을 만들 땐 돈 벌라 말라고. 돈 욕심으로 좇아가면 술을 망친께(망치니까) 원료 좋은 놈으로 늘 생각하라고. 어쩌면 간단하게 살 세상을 복잡허니 살고 있는 거이제.”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