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제11차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석한 이은주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노란봉투법 제정’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photo 뉴시스"소선(小善)은 대악(大惡)과 닮아 있고, 대선(大善)은 비정(非情)과 닮아 있다."일본의 기업경영 귀재로 알려진 이나모리 가즈오가 일본항공(JAL) 회장으로 재임 중에 했던 말이다. 쉽게 말해 작은 선의는 오히려 커다란 악덕에 가깝고, 큰 선량함은 비정해 보인다는 의미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심각한 경영난에 빠진 일본항공을 불과 13개월 만에 흑자로 전환시키면서 '대선'을 이뤘다. 당시 이나모리 회장은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과감한 비용절감을 통해 수익성을 극대화했다. 일본항공이 재건된 뒤에는 대량해고를 당했던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복직시키기도 했다. 성공의 방정식은 그가 말한 그대로, 소선을 피하고 대선을 따른 것이었다.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통스러운 과정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문제 해결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누군가는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저항도 거세진다. 그렇다고 고통을 회피하고자 '좋은 게 좋은 것'으로 위기를 모면하면, 문제는 더욱 악화되기 쉽다. 그러나 많은 정치인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이나모리 회장의 성공 방정식과 반대로 간다. '대악에 가까운 소선'을 따르는 경향이 짙다는 말이다. '대선'은 비정해 보이기 때문에 표가 달아난다. '소선'은 생색을 낼 수 있기 때문에 표가 생긴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종종 풀기 어려운 본질적 문제를 방치하고, 대증요법으로써 눈가림의 호의를 베푼다. 이런 면에서 노란봉투법은 정치권의 전형적인 '소선'이다.노란봉투법은 파업에 가담한 노동자나 노동조합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 범위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개정안이다. 사측이 노동자에게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하거나 가압류를 하게 되는 경우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자의 파업권을 제한하고 노조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취지다. 쉽게 말해서 노란봉투법의 내용은 '돈 걱정 하지 말고 파업해도 된다'는 것. 지금까지 노동쟁의의 가장 혹독한 대가가 사측의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였음을 생각해보면, 노란봉투법은 노동자의 파업권을 크게 확대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노란봉투법은 또한 '사용자'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이렇게 되면 원청 사용자는 하청 노동조합 등에 대해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로서 단체교섭 의무가 생긴다. 하지만 파업의 자유를 확대하는 것이 꼭 노동자의 권리 향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원청의 사용자에게 교섭 의무가 생긴다고 해서 하청 노동자들이 처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에서 노란봉투법은 현상의 본질을 가린다.우선 노란봉투법 발의 논의가 다시 활발해진 데에는 대우조선해양의 하청노조 파업문제가 결정적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의 하청노조는 51일간 도크를 점거하고 파업을 이어갔다. 이에 따라 생산공정은 한 달이 넘게 중단됐다. 회사는 이 기간에 발생한 손해액이 8085억원쯤 된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사측은 확정되지 않은 손실을 제외하고 470억원에 대해 노조 측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노조 입장에서는 이렇게 천문학적인 돈을 갚을 여력이 있을 리 만무했고, 마침 하이트진로에서도 노조의 점거농성이 겹치면서 정치권에서는 사측의 손배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 논의가 뜨거워진 것이다. 그러나 노란봉투법은 이들이 처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의 핵심적인 문제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에서 비롯한다. 대부분의 산업군에서 원청 노동자의 근로조건과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은 하늘과 땅 차이다. 조선업계의 경우 노동시장의 이원화 문제는 훨씬 심각하다. 조선업은 세계의 경제상황에 따라 부침이 아주 심하다. 따라서 불경기에는 쉽게 인력을 해고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의 노동법상 정규직을 해고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대우조선해양은 하청을 활용해 노동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피해를 받는 쪽은 거의 모든 경우에서 하청 노동자들이다. 임금 삭감의 압박이나 해고의 압력은 늘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몫이었다.문제는 2015년부터 조선산업이 극심한 경영난을 겪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대우조선해양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하청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2016년 이후 경영권이 한국산업은행으로 넘어가면서 경영진들은 정치적 외풍에 취약한 구조에 놓이게 됐는데, 정치에 민감해진 경영진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회사의 경쟁력을 제고하기보다 복지부동한 자세로 단기 실적에 치중했다. 원청의 비용절감을 위해 하청의 노동자들은 더 적은 임금으로 일을 해야 했고, 그중에는 해고를 당하거나 이직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 가운데서 원청의 노동자들은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았다.다시 노란봉투법으로 돌아와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결하지 않고서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에 대한 면책권을 주는 것은 골절 환자에게 파스를 붙여 주는 셈이다. 노란봉투법을 통해 하청의 노동자들이 원청의 사용자와 직접 교섭에 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노동 이원화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하청 노동자의 처우를 열악하게 만드는 데에는 원청 노동자들의 기득권 지키기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원청의 사용자만 만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노란봉투법은 원청 노동조합의 기득권 문제를 들추지 않으면서 노조의 손해배상을 제한함으로써 사측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만든다.아울러 노란봉투법은 노조법의 다른 조항들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노조법 제42조에서는 '생산 기타 주요업무에 관련되는 시설을 점거하는 형태로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제38조에서는 다른 근로자의 업무를 방해하는 형태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노란봉투법은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의 파업에서와 같이 주요시설을 점거하고 다른 노동자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파업의 경우에도 면죄부를 주고 있어서, 되레 위법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노란봉투법에 적극적인 더불어민주당이나 정의당이 노동시장에서 안정적 지위를 누리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나 기득권을 건드리는 발언을 한 사례를 보지 못했다. 이번 대우조선해양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대우조선해양 본사의 노동자가 누리는 기득권에 대해 제대로 비판하는 진보진영 정치인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서 마치 노동자를 위한 것처럼 노란봉투법을 자신 있게 내놓는다. 노동쟁의가 폭넓게 허용되면 단기적으로 노조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고용자는 장기적으로 투자를 기피하고 고용증가도 꺼리게 될 것이다.노란봉투법은 그래서 소선이고 대악에 가깝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진정 노동자를 위한 정치세력임을 자처하려면, 비정해 보일지라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해결이라는 대선을 좇아야 할 것이다. [신청년유감]은 여야의 유망 청년정치인들이 하나의 사안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자신의 생각을 풀어나가는 코너입니다. 국민의힘에서는 김재섭 도봉갑 당협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권지웅 전 비상대책위원이 필자로 나서고 있습니다.